2007년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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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K리그는 14개 팀이 참가하여 26경기 단일리그로 진행되었으며, 정규 시즌 후 상위 6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포항 스틸러스가 정규리그 5위로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개인 수상으로는 최우수 선수상에 안드레 루이스 타바레스, 신인선수상에 하태균, 득점상에 까보레가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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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영 방식
이전 년도와 같이 전기와 후기 리그 구분을 하지 않고, 14개 팀이 26경기 단일리그로 치러졌다. 정규 시즌이 끝난 후 상위 6개 팀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5]
2007년 K리그에는 14개 구단이 참가하였다.
6월 23일 13라운드가 끝나고, 7월 7일부터 7월 29일까지 아시안컵으로 인해 휴식 기간을 가졌고, 8월 8일부터 다시 14라운드가 시작되었다.[5]
리그컵인 하우젠컵 2007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성남 일화 천마와 전남 드래곤즈를 제외한 12개 팀이 두 개 조로 나뉘어 상위 두 팀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앞서의 두 팀과 함께 6강 플레이오프를 벌였다. 2007년에 처음 도입된 6강 플레이오프는 정규리그 후반까지 치열한 중위권 다툼으로 리그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는 데 크게 기여하며 리그 막바지와 플레이오프 흥행에 도움이 되었다.[5]
하지만, 정규리그 상위 팀들에게 홈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점 이외에 특별히 유리한 점이 없었고, 최종적으로 우승한 팀이 정규리그 5위였던 포항 스틸러스였다는 점은 정규리그 1위와 리그 챔피언에 대한 가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외국 리그에서 찾아보기 힘든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제도에 대한 비판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5]
3. 참가 구단
3. 1. 구단 목록
4. 정규 시즌
2007년 K리그 정규 시즌은 3월 3일부터 10월 21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14개 팀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팀당 26경기를 치렀다. 정규 시즌 결과, 성남 일화 천마가 1위를 차지하여 K리그 챔피언십 결승전에 직행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울산 현대 호랑이, 경남 FC, 포항 스틸러스, 대전 시티즌이 3~6위를 기록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합류했다.
정규 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더비 경기는 다음과 같다.
4. 1. 순위
4. 2. 경기 결과
5. 포스트시즌 (K리그 챔피언십)
2007년 K리그 챔피언십은 6강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챔피언 결정전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리그 4위 경남 FC와 5위 포항 스틸러스, 3위 울산 현대 호랑이와 6위 대전 시티즌이 맞붙어 각각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 호랑이가 승리하여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울산 현대 호랑이를 꺾고 포항 스틸러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포항 스틸러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포항 스틸러스가 성남 일화 천마를 1, 2차전 합계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AFC 챔피언스리그 2008 조별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5. 1. 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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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경기 결과
K리그 챔피언십 2007 6강 플레이오프는 리그 4위와 5위(제1경기), 리그 3위와 6위(제2경기)가 단판 홈 경기로 진행되었다. 승리 팀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패배 팀은 정규 리그 순위에 따라 시즌 5위, 6위가 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 승리 팀들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단판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팀을 결정했다. 경기는 정규 리그 순위가 높은 팀의 홈에서 열렸고, 패배 팀은 시즌 4위가 되었다.
준플레이오프 승자와 리그 2위는 플레이오프에서 단판 경기로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007 진출 팀을 결정했다. 경기는 정규 리그 2위 팀의 홈에서 열렸고, 패배 팀은 시즌 3위가 되었다.
K리그 챔피언십 2007 플레이오프 승자와 리그 1위는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007에서 우승, 준우승 팀을 결정했다. 정규 리그 1위 팀은 1차전을 원정, 2차전을 홈 경기로 치렀다. 우승 팀은 AFC 챔피언스리그 2008 조별리그 출전권을 얻었다.
6. 우승 구단

'''포항 스틸러스'''는 2007년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1986년, 1988년, 1992년에 이어 통산 4번째 우승이다.[1]
7. 시즌 통계
2007년 K리그는 총 2,296,389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경기당 평균 12,215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이는 K리그가 협회 축구 국내 프로 리그 평균 관중 수에서 세계 15위에 해당함을 의미한다.[1]
개인 기록으로는 까보레가 18골로 득점왕을, 따바레즈가 13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했다.[1]
7. 1. 개인 기록
2007년 K리그의 개인 기록으로는 득점과 도움 순위가 있다. 까보레는 18골로 득점왕을, 따바레즈는 13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했다.[1]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7. 1. 1. 득점
이 목록은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의 골을 포함한다. 공식적인 득점왕은 정규 시즌 기록만으로 결정되었으며, 까보레가 17골로 수상했다.[1]
7. 1. 2. 도움
이 목록은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의 골을 포함한다.
7. 2. 팀 기록
2007 시즌 K리그는 총 2,073,808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경기당 평균 11,786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이는 K리그가 협회 축구 국내 프로 리그 평균 관중 수에서 세계 15위에 해당함을 의미한다.[1]7. 2. 1. 구단별 관중 수
- 플레이오프 및 챔피언 결정전 관중수 포함.
2007 시즌 K리그는 총 2,073,808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경기당 평균 11,786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이는 K리그가 협회 축구 국내 프로 리그 평균 관중 수에서 세계 15위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7. 3. 외국인 선수
8. 수상
염동균
김영철
장학영
김용대 ||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
|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3] || 김두현 || 성남 일화 천마
|}
여름에 ''FourFourTwo'' 한국판에서 K리그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가 발표되었으며, K리그 공식 시상은 아니었지만 100명의 선수가 선정 과정에 참여했다.[3]
8. 1. 개인 수상
염동균김영철
장학영
김용대
|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
여름에 ''FourFourTwo'' 한국판에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가 발표되었으며, K리그의 공식 시상은 아니었지만 100명의 선수가 선정 과정에 참여했다.[3]